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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by 궁금해봄이6 2025. 7. 22.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중장년 고독사 증가, 그건 사회의 책임이다"

지난 2024년 11월, 서울 강북의 한 빌라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시신은 사망한 지 3주가 지난 뒤에야 수거되었고, 

이웃 누구도 그의 부재를 몰랐다.
“혼자 사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관리인의 말만 남았다.

이른바 고독사.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이 비극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노년층을 넘어 중장년 남성, 

40~60대 1인 가구에서도 고독사 발생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시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로 추정되는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50~64세의 중장년층이며,
이들은 대부분 소득 불안정, 관계 단절, 건강 이상, 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글에서는 

중장년 고독사가 증가하는 원인과 구조,
그리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통계로 드러난 고독사의 실체

 

‘고독사’는 정확한 법적 정의가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망 없이 홀로 사망해 일정 기간 발견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에서 고독사 추정 사망자 수는 연간 약 4,000~5,000명 수준이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중장년층 남성 1인 가구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고독사 하면 노년층만을 떠올렸지만,
최근엔 ‘은퇴 전후의 남성’, ‘이혼이나 가족 단절을 경험한 중장년’,

‘비자발적 퇴직자’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 외곽의 

노후화된 원룸·다세대 밀집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다:
 ㅇ 가족 및 지인과 연락 단절
 ㅇ 직업 상실 또는 장기 미취업
 ㅇ 고혈압·당뇨 등 기저질환 방치
 ㅇ 정신건강 문제(우울, 알코올 중독 등)
 ㅇ 긴급 구조 요청이 불가능한 환경

이처럼 사회적 연결망과 물리적 안전장치가 함께 사라진 상태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그 사실조차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특히 2024년 기준 서울시 자료를 보면,
전체 고독사 추정 사망자 중 약 56.3%가 

50~64세 사이의 중장년층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남성 비율은 여성의 두 배 이상이다.
이는 단순한 고립 문제가 아니라, 

성별·연령별로 고립의 위험도가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의 고독사가 사망에 이를 때까지 거의 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일정 기간 이상 임대료나 공과금이 연체되거나,
우편물이나 쓰레기가 쌓이는 등의 간접적인 외부 징후로 이웃이 신고하면서 발견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주변과 단절된 채 살고 있는 중장년층은, 오랜 시간 발견되지 못한 채 

사망한 후 부패가 진행되어서야 알려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죽음조차도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맞이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 복지 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인천, 대구, 광주 등 광역시권 도시의 외곽 1인 주거 밀집지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고독사는 이제 ‘노인 복지’의 영역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사회안전망의 재구성이 필요한 이슈가 된 것이다.

 

 



왜 중장년 남성이 더 취약한가?

 

중장년 고독사의 중심에는

‘관계의 상실’과 ‘역할의 공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특히 남성 1인 가구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이 일과 가족 중심으로만 형성되어 있어
퇴직이나 이혼, 자녀와의 거리감 등이 발생하면 곧바로 고립 상태로 이어지기 쉽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남성 가장’ 중심의 생애주기 구조를 기반으로 해왔기 때문에,
일터와 가정에서의 역할을 상실한 남성은 자신을 증명할 공간과 소속감을 잃기 쉽다.
이러한 상실감은 곧 무기력, 자기 방임, 삶의 의미 상실로 이어진다.

심리적으로도 중장년 남성은 

자신의 감정이나 고통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약한 모습 보이지 않기’, ‘참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오히려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키고 도움 요청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다.

또한 현실적으로 이들은 대부분 의료 접근성이 낮고, 

공공서비스와의 접점도 희박하다.
주민센터, 복지관, 지역 돌봄센터 등과의 연결이 없거나,
지원 제도가 있어도 정보 부족이나 절차의 장벽으로 인해 

‘제도 밖 시민’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문화적 배경 또한 이 문제를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중장년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말하지 않는 것’,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이로 인해 정작 자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상담센터, 복지기관, 정신건강센터의 문턱을 높게 느끼고, 

‘나는 괜찮다’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방치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특히 이들은 대체로 지역사회와의 접촉면도 적고, 친구관계도 점차 소멸되며,
직장, 가족 외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은둔형 생활로 이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위기 신호를 외부에 알릴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며, 

고독사를 더욱 조용하고 빠르게 만든다.

또한 이혼이나 가족 내 갈등으로 가족과도 소원해진 경우,
자녀와 연락을 끊고 수 년을 홀로 지내다가 사망 후에야 관계가 드러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고독사가 단지 ‘혼자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사람과 연결되지 못한 수많은 관계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회적 거울이기도 하다.

이렇듯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역할 붕괴와 정체성 상실, 사회적 기능 단절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독사의 해법은 

이들의 감정 표현, 관계 재건,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통합적 접근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구조를 준비해야 하는가?

 

고독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안전망의 실패가 빚어낸 죽음이다.
따라서 해결책 역시 개인 책임을 넘어서 공동체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조기 발견’을 위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고독사 위험군을 선별하고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고독사 예방 인공지능 시스템’, ‘이상 징후 감지 센서’,
혹은 배달원·택배기사·관리인과 연계된 주민 이상 탐지 네트워크 구축 등이 시급하다.

둘째, 공공 연결망의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 돌봄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주거 복지 기관이
단절된 중장년 남성과 ‘무작정 만남’이 아닌 

‘관계 회복’을 중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
 (예: 생활 코디네이터, 1인 복지 매니저, 동네복지팀 등)

셋째, 주거 환경 자체의 재설계도 필요하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고시원, 쪽방, 반지하 등이 아니라,
공동 주방, 거실, 커뮤니티 라운지가 포함된 ‘사회적 혼자살이 공간’이 확대되어야 한다.
‘혼자 살되, 혼자 죽지 않게 하는’ 구조적 설계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죽음 후 처리’보다 ‘삶의 연결 유지’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고독사가 발생한 뒤 수습하고 통계화하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그 죽음이 오지 않도록 ‘살아있는 지금’을 찾아가야 한다.

이러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선,
‘찾아가는 복지’에서 ‘관계를 재건하는 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즉, 대상자 중심의 1회성 상담이나 지원을 넘어
일상 속에서 정기적으로 연결을 유지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촘촘한 복지 그물망이 필요하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안부 확인 로봇’, ‘독거 위기 가구 실시간 센서’, ‘디지털 문패 시스템’ 등
스마트 복지 기술을 활용한 예방적 고독사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예: 일정 시간 문이 열리지 않거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동사무소에 알림이 가는 구조.)

또한 일본 도쿄도와 오사카시는 혼자 사는 고위험군 중장년에게 

주기적인 전화 연결 및 커뮤니티 활동 참여를 의무화하거나,
‘지역 고립 예방 법제화’를 통해

행정력이 일정한 관심과 연결을 유지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죽음을 줄이는 일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라는 인식의 확산이다.
중장년 고독사 대응은 단순히 사망률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연결의 가치’를 보장받는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고독사를 막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연락 두절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자, 동료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중장년 고독사 증가는
관계가 단절된 사회, 의미를 잃어가는 삶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그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구조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이제 ‘혼자 사는 사람’을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자립과 고립은 다르다.
자율적 삶을 존중하되, 필요할 때 손 내밀 수 있는 사회,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함께 반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혼자 있어도, 혼자 죽지 않게.
이 단순한 말이 더 이상 문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