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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엘리시움, 철학하는 게임의 한계 실험

by 궁금해봄이6 2025. 8. 16.

 

게임은 본래 오락의 영역이었다.

조작과 규칙 속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재미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놀이터’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특히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구축 기술의 발달은

게임을 문학,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와 대등하게 만들었다.

이제 게임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사고’를 자극하고 ‘철학’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다.

이 변화의 선두에는  

ZA/UM 스튜디오가 만든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이 있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RPG 문법을 대부분 제거했다. 

전투 시스템은 최소화됐고, 대신 대화와 내면 독백, 

선택지가 플레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의 정체성조차 불분명하다. 

기억을 잃은 형사라는 설정 아래,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도덕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게임의 핵심 철학 실험으로 기능한다.

철학적 실험으로서의 디스코 엘리시움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대화와 선택지를 통한 인식론적 실험이다. 

캐릭터와의 대화, 주변 환경의 해석은 모두 플레이어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정치와 이념의 복잡한 구조를 게임 속 사회에 재현했다. 

공산주의, 자유주의, 우익 민족주의 등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하며, 

플레이어의 발언과 행동은 특정 이념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셋째, 인간 심리의 파편화를 적극적으로 게임 시스템에 반영했다. 

‘내면의 목소리’가 스킬로 구현되어, 

플레이어는 때때로 서로 상충하는 내적 자아들의 설득과 방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러한 실험은 기존의 상업 게임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문학과 철학, 정치학이 뒤섞인 ‘읽는 게임’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철학하는 게임의 한계”라는 주제를 던진다. 

과연 게임이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전달하면서도 플레이어를 몰입시킬 수 있는가? 

복잡한 이념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게임은 어떤 지점에서 몰입을 잃고 설교로 변질되는가? 

그리고 이 ‘한계선’을 넘을 때 게임은 예술로서 어떤 가능성을 획득하거나 상실하는가?

디스코 엘리시움, 철학하는 게임의 한계 실험
디스코 엘리시움, 철학하는 게임의 한계 실험

 

 

 

내면의 목소리 — 인식론적 실험의 양면성


디스코 엘리시움의 가장 독특한 시스템은 ‘내면의 목소리’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24가지 성격과 능력치로 구성된 내적 자아를 갖고 있으며, 

각각은 독립된 인격처럼 대화에 개입한다. 

예를 들어, ‘논리(Logics)’는 합리적인 분석을 제안하고, 

‘감정이입(Empathy)’은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며, 

‘권위(Authority)’는 상대를 제압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내면의 목소리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정반대의 조언을 던진다.

이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선택의 순간, 우리는 하나의 자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목소리의 토론과 싸움을 거친다. 

게임은 이를 대화창과 주사위 판정이라는 RPG 요소로 구현한다. 

이로써 플레이어는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판단’의 과정을 놀이로 체험한다.

하지만 이 실험은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내면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많고 세세한 경우,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탈할 수 있다. 

특정 상황에서 10개 이상의 목소리가 차례로 개입하면, 

그 순간의 감정적 몰입이 끊기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메타 게임’ 감각이 강해진다. 

이는 ‘몰입’과 ‘사유’의 균형 문제를 드러낸다. 

철학적 실험은 깊이를 줄 수 있지만, 

게임이라는 매체의 장점인 즉각적 감정 반응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

 

 

 


이념의 거울 — 정치적 선택과 몰입의 충돌


이 게임의 세계관은 복잡하고 어둡다. 

레바숄(Revaachol)이라는 도시는 혁명과 패배, 

식민지 지배, 경제 붕괴와 범죄가 뒤섞인 공간이다. 

게임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특정 이념을 지지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 ‘자유시장주의자’, ‘우익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선택지는 매우 구체적이며, 대사 하나가 곧 정치적 선언이 된다.

이 정치적 실험은 대단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게임이 정치적 중립을 가장하거나 단순화하는 반면, 

디스코 엘리시움은 플레이어가 노골적으로 이념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를 지지하면 빈민가 사람들과 친밀해지지만 

경찰 조직 내에서는 신뢰를 잃는다. 

반대로 시장주의를 선택하면 

범죄 조직과의 거래가 쉬워지지만 시민들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몰입의 양날의 검이 된다. 

현실 정치와 유사한 구조는 철학적 토론을 풍부하게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캐릭터의 생각일 뿐’이라는 거리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지나치게 복잡한 정치 설정은 게임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특정 이념에 대한 제작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교훈 전달 게임’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다. 

즉, 정치적 실험은 게임을 철학적으로 깊게 하지만, 

몰입을 깨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야기와 시스템 — 서사 실험의 경계선


디스코 엘리시움은 전통적인 ‘목표 지향’ 게임과 다르다. 

살인 사건 수사를 해결하는 것이 표면적 목표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서브플롯과 철학적 대화로 뒤덮인다. 

플레이어는 사건보다 인물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결과적으로 ‘이야기’가 ‘목표’보다 우위에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구조는 문학적 완성도를 높인다. 

플레이어는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인물처럼 느낀다. 

그러나 서사 중심 설계는 게임 시스템의 재미를 희생할 위험이 있다. 

사건 해결이 서사의 필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느슨한 동기부여 속에서 방황할 수 있다. 

일부는 이를 ‘자유도’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일부는 ‘목적 없는 표류’로 느낀다.

또한 주사위 판정과 능력치 체크라는 전통 RPG 요소가, 

때로는 철학적 대화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끊는다. 

높은 확률에도 실패하는 주사위 굴림은 현실적인 불확실성을 구현하지만, 

이야기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좌절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과 서사의 긴장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던진

 ‘철학하는 게임’의 근본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즉, 게임이 사유의 장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게임은 오락’이라는 기존 관념을 넘어,

철학과 정치, 인간 심리의 실험장을 구현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통한 인식론적 탐구,

정치적 선택을 통한 이념 실험, 서사 중심의 구조는

모두 게임이 문학과 예술에 필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실험은

몰입과 재미의 균형이라는 고전적 과제 앞에서 흔들린다.

복잡한 정치 설정은 몰입을 방해할 수 있고,

과도한 내면 대화는 흐름을 끊으며,

서사 중심 구조는 게임적 동기부여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결국 디스코 엘리시움이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철학하는 게임’의 가능성을 실증한 동시에, 

그 한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게임은 충분히 깊이 있는 사유를 전달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의 경험이 설교로 변질되지 않도록 세심한 균형이 필요하다. 

이 균형은 단지 게임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매체로서 게임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게임이 철학적 실험에 도전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말한다. “게임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은 수백 가지다.” 

그리고 그 수백 가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철학하는 게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