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게임을 ‘놀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반응하고, 적을 쓰러뜨리며, 퍼즐을 풀고,
레벨을 넘기면서 성취감을 얻는 일련의 과정들 말이다.
하지만 몇몇 게임들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플레이어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고, 선택의 무게를 통감하게 하며,
나아가 존재론적 사유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런 게임들은 ‘정답’을 주기보다,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서사 너머의 철학을 탐색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게임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하나는 초월적 세계관 속에서 반복되는 기억과 구원의 서사를 그려낸
*바이오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적 선택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윤리적 고민을 요구하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이다.
이 두 작품은 단지 ‘스토리가 좋은 게임’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기억과 시간,
윤리와 정체성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기억과 구속된 과거,
그리고 그로부터의 구원을 주제로 삼는다.
플레이어는 부커 듀잇이라는 남성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의 과거가 어떻게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지닌 소녀 맥스 콜필드를 통해,
선택이 곧 책임이자 고통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닌,
‘선택하지 않음’조차도 책임이 되는 복잡한 윤리적 장치를 탑재한 이 게임은
시간을 ‘기술’이 아니라 ‘고민의 무게’로 전환시킨다.
이 글은 이 두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과 구원,
시간과 윤리라는 거대한 테마를 게임적 방식으로 녹여내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각각의 서사가 전달하는 정서적 울림과 철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우리가 이 게임을 단순히 ‘재미’ 이상의 것으로 느끼게 되는 이유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기억과 구원의 장치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다차원적 서사 구조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겉으로 보면
화려한 스팀펑크 도시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인칭 슈팅 게임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기억’이라는 모티프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배경 설정이나 플롯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전체가 하나의 기억 회복 구조처럼 설계되어 있으며,
부커 듀잇이라는 인물이
점차 ‘자신이 누구인가’에 다가가는 여정 그 자체가 곧 게임의 핵심 서사다.
즉, 플레이어는 총을 쏘고 적을 해치우는 동안에도
사실상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중이다.
이 점에서 이 게임은 다른 슈팅 게임과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주인공 부커 듀잇은
‘소녀를 데려오면 빚을 탕감받을 수 있다’는 임무로 콜롬비아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가 점차 기억을 회복해 가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선택과 그로 인해 탄생한 ‘다른 세계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기억의 회복은 단순히 개인적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법칙을 흔드는 ‘존재론적 사건’으로 기능한다.
그의 과거가 단순히 잘못된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선택이 수많은 평행 세계를 낳았다는 사실은,
기억이 곧 현실을 바꾸는 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기억이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기능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결정짓는 ‘능동적 개입’이라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이 게임의 핵심은 다중 우주(multiverse) 설정을 통해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평행한 세계를 만들고,
그 각각의 세계가
또 다른 버전의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끊임없이 '과거의 선택'을 되짚게 만들며,
동시에 하나의 서사를 다각도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즉, 이 게임은 하나의 줄거리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가능성의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엘리자베스가 여는 차원 간의 문들은
단지 공간적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가능성의 중첩을 시각화한 장치다.
부커는 사실상 ‘자신의 죄를 잊은 자’이며,
콜롬비아는 그 죄를 형상화한 도시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는 물리적으로 ‘문’을 여는 능력을 가졌지만,
실은 부커의 죄의식과 회복되지 않은 기억을 열어젖히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게임은 반복되는 선택과 시간의 재구성 속에서
부커를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부커는
자신이 콜롬비아의 창조자인 ‘컴스탁’임을 깨닫고,
엘리자베스들에 의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기억과 구원의 원형적 반복 속에서 선택이
어떻게 자기 파괴를 통해서만 순환을 멈출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여기서 기억은 단지 정보의 회복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틀이다.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현재의 자신일 수 없다.
기억은 구원으로 향하는 통로이자, 동시에 자멸의 장치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그런 역설 위에 구축된 게임이다.
시간의 윤리적 무게 —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감정적 선택 구조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시간 여행이라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맥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SF적 상상력보다는,
그 능력이 개인의 관계와 공동체에
어떤 윤리적 무게를 주는지를 탐구하는 데 더 집중한다.
맥스는 친구 클로이를 구하기 위해,
마을 아카디아 베이의 재난을 막기 위해, 그
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후회를 되돌리기 위해 시간을 거듭 되감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능력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만능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도덕적 딜레마를 끊임없이 유발하며,
플레이어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가장 극적인 선택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맥스는 클로이를 살리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바꾸었지만,
그로 인해 아카디아 베이가 파괴된다.
반대로 클로이를 희생시키면 마을은 평온을 되찾는다.
즉,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구할 것인가,
혹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희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게임적 갈등이 아니라,
윤리적 세계관의 결정판이다.
이 게임의 진정한 무게는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그 선택이 남기는 정서적 흔적에 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시간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감정의 깊이를 구현한 대표적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맥스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맥스가 겪는 고뇌와 슬픔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현실에서도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우리 삶에 투영하게 만든다.
게임의 서사적 확장 — 기억과 시간의 교차점에서
이 두 게임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단지 극적인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게임만이 가능한 서사 구조’를
정교하게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억과 시간이라는 주제는 영화나 문학에서도 다뤄져 왔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거나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밀도를 높인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는 기억의 단편들이 퍼즐처럼 흩어져 있다.
플레이어는 전투 중간중간 수집하는 오디오 로그,
등장인물의 대화, 배경의 상징 등을 통해 서사를 재구성한다.
이는 게임이 수동적 소비가 아니라 능동적 사유의 매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이어져 있었다’는 깨달음은 플레이어에게도 깊은 충격을 준다.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모든 선택이 의미 있었음을 거꾸로 증명하는 구조다.
반면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되돌리기’ 기능을 통해
후회와 선택의 무게를 반복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며,
각각의 선택에 따른 미묘한 감정 변화나 인물 간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과정은,
서사와 감정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게임의 특징은 ‘서사적 정답’이 없다는 데 있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고, 모든 선택이 후회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현실을 닮은 게임적 구조다.
이처럼 두 게임은 기억과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선택’과 ‘자아’에 대한 동일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그리고 그 결과를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가?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와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각각의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하나는 자기 기억의 파편 속에서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윤리적 책임을 감내해야 하는 이야기다.
이 게임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기억이 나를 정의하는가? 선택은 구원을 가져오는가? 시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깊은 고민 속으로 빠뜨리는가?
두 게임 모두 플레이어에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많은 질문과 감정의 층위를 남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게임 서사의 진정한 힘이다.
단지 감상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로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구조.
결국 이 두 게임이 우리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플레이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사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