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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2억, 함께 사라진 내 삶의 10년”

by 궁금해봄이6 2025. 7. 21.

 

“보증금 2억, 함께 사라진 내 삶의 10년”


전세 사기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집주인이 연락이 안 돼요.”
“확인해보니 집이 경매에 넘어가 있었어요.”
“보증금이 그대로 묶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수가 2024년 기준 2만 명을 넘어서면서, 

전국 곳곳에서 이른바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 사기란, 

통상적으로 집주인 또는 공모 세력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채기 위해 허위 계약, 

담보 대출, 허위 등기 등을 이용한 사기 수법을 말한다.

 

최근에는 20~30대 청년층과 사회 초년생들이 전세 사기의 주요 피해자가 되고 있어 

사회적 분노와 불안이 더 커졌다.

이에 정부는 2023년 국회를 통과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을 기반으로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제 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피해자 인정 기준이 까다롭다”, “실질적 구제가 안 된다”,

“시행령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전세 사기의 배경과 특별법의 핵심 내용, 

그리고 그 실효성과 한계에 대해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보증금 2억, 함께 사라진 내 삶의 10년”
“보증금 2억, 함께 사라진 내 삶의 10년”

 


전세 사기의 실체, 왜 이렇게 커졌을까?

 

전세 사기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

저금리 시대의 전세 선호, 보증보험 제도 허점이 함께 작용했다.
특히 2020~2022년 사이 급등한 수도권 빌라 가격은 

실제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은 ‘역전세’ 현상을 야기했고,
이를 이용한 ‘허위 매매-고가 전세-대출 편취’ 구조의 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대표적인 수법은 다음과 같다
 ㅇ 허위 계약서를 통해 실소유주인 것처럼 속여 전세 계약 체결
 ㅇ 임차인이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를 받기 전에 담보대출로 다중 채무 발생
 ㅇ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집을 경매에 넘긴 뒤 사라지는 수법
 ㅇ ‘바지 사장’을 내세운 집주인 위장, 실제 소유자는 조직적으로 사기 행위에 가담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전세 계약이 안전한 줄 알고 입주했다가,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보증보험 미가입자나 시세 정보에 어두운 청년층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 화성 동탄, 수원 권선구 등이 대표적인 피해 밀집 지역이다.
여기에는 수백 채의 빌라를 보유한 ‘빌라왕’들이 등장했고,

그들 중 일부는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해 보상 책임조차 묻기 어려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사기 수법이 만연할 수 있었던 데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공공 시스템의 부재도 크게 작용했다.

 

임차인은 일반적으로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나 등기부등본 한 장에 의존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이미 수차례 담보대출이 잡혀 있거나 체납 이력이 있는 주택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이 이뤄지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신축 빌라 분양 + 전세 계약’을 유도하는 이른바 ‘빌라 사기 컨소시엄’은 설계부터 조직적이다.
시공업자, 분양업체, 위장 집주인, 사기 전문 중개인, 대출 브로커 등이 

역할을 나눠 허위 감정가를 만들어내고, 

허술한 보증 시스템을 노려 조직적으로 전세금을 갈취하는 구조다.

여기에 ‘확정일자’만 믿고 계약하는 임차인들의 인식 부족,
또한 법적 보호 순위에 대한 안내 미흡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기는 더욱 대담해졌다.

 

결국 이는 개인의 부주의로 보기엔 어려운, 

정책과 제도의 사각지대가 빚은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특별법, 어떤 내용이 담겼고 어떻게 시행되나

 

전세 사기 특별법은 크게

피해자 인정, 임시거처 제공, 금융지원, 경매 우선매수권 부여, 채무조정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① 피해자 인정 기준
  - 법원 확정 판결 없이도, 지방자치단체장이 피해자로 인정 가능
  - 전세금 미반환 사실 + 고의적 사기 정황 + 해당 세대의 실거주 여부 등이 주요 요건
  - 피해자 인정 후 한시적 특별 지원 대상자 등록

② 공공임대 또는 임시 거처 제공
  - 기존 거주지에서 강제 퇴거당한 피해자에게 최대 2년간 임시 거처 지원
  - LH 및 지자체가 임대 주택을 제공

③ 경매 우선매수권 부여
  - 전세 사기로 인한 부동산 경매 시, 피해자가 시세 대비 낮은 가격에 우선 매수 가능
    ※ 단, 자금 조달 능력이 없을 경우 활용이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 있음

④ 대출·채무 조정 및 생활비 융자
  - 피해자에게 최대 1억 원 수준의 생활안정자금 대출
  - 신용등급 하락 방지, 상환 유예, 보증금 대출 채무조정 포함

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를 통한 피해 매입
  - 피해 주택을 공공이 매입한 후, 피해자에게 우선 임대 또는 분양

정부는 이를 위해 ‘전세 사기 통합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법률·금융·주거 상담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서류가 복잡하고, 

인정 절차가 너무 느리다”는 불만도 많다.

전세 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를 돕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실제로는 제도를 몰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에 정부는 2025년부터 

전세사기 통합지원센터를 10개 광역시 중심으로 확대 설치하고, 

온라인 상담 창구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스스로 본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피해자 중심이 아닌 제도 중심의 행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우선매수권의 경우, 

피해자가 매수 의향을 표시하면 

자금 지원 없이도 본인이 해당 물건을 우선 낙찰받을 수 있다는 구조다.
하지만 매입 자금이 없는 대부분의 피해자에게는 사실상 활용이 불가능하며, 

‘보여주기식 구제책’이라는 불신이 생겨난다.

또한 채무조정제도 역시, 신용 회복이나 상환유예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증금 자체를 되돌려주는 직접적 방식은 여전히 부재하다.
이는 실제 피해자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단기적인 신용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진짜 문제는 ‘제도 밖 피해자들’이다

 

전세 사기 특별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제도 밖에 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인정 요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입주 시점에 확정일자와 전입신고가 누락되었거나, 

등기상 채권 우선순위 확인이 불분명한 경우,
사실상 피해를 입었더라도 법적으로는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또한 ‘임대인이 고의로 사기 행위를 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또는 소송 절차를 기다려야만 

피해자로 등록되는 사례가 많다.
이는 신속한 지원이라는 법의 취지와 충돌한다.

둘째는 보증금 반환을 위한 재정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매 우선매수권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해당 부동산을 매수할 자금 여력이 없는 서민층에겐 무용지물이다.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되찾을 수 있는 금액은 여전히 ‘제로’에 가깝다는 목소리도 높다.

셋째는 지자체별 피해자 인정률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같은 조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피해 인정을 거부하거나 서류 심사를 까다롭게 적용해
‘운 나쁘면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불공정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① 사전 위험 경보 시스템 구축,
② 등기부 등본의 실시간 변동 안내 의무화,
③ 임차인 보호용 ‘전세 진단 서비스’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 구제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준의 불일치’와 ‘지자체 재량의 편차’다.
실제로 서울과 경기, 인천 등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동일한 상황의 피해자조차 지자체에 따라 피해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별법이 ‘지방자치단체장 재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객관적 기준이 부실하다 보니 행정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또한 법적 피해자로 인정되더라도, 현실에서는 ‘이중 피해’를 겪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컨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였지만, 

추가 소송 비용과 법률 대응에 따른 금전적·정신적 부담까지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일부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된 이후가 더 지옥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피해자 구제가 ‘제도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거나, 

실행단계에서 너무 복잡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단지 법이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구제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구제의 실효성’이 정책의 진짜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전세 사기 특별법은 수많은 피해자의 눈물 속에서 탄생한 법이다.
시행 자체는 의미가 크고, 피해자 지원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간 조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만 구제받는 구조, 복잡한 요건과 입증 부담, 

재정 여력 부족으로 인한 실효성 부족 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진짜 문제는 ‘사기’가 아니라 ‘사기 예방 장치의 부재’다.
임차인이 믿고 전세 계약을 할 수 있는 정보 공개 시스템, 

위험 경보 체계, 계약 전 단계에서의 공적 개입 없이는

앞으로도 또 다른 피해자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 사기 특별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는 법을 통해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고통을 예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