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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테일, 당신의 선택은 얼마나 윤리적인가?

by 궁금해봄이6 2025. 8. 6.

 

게임은 오랫동안 재미, 경쟁, 모험의 세계로 인식되어 왔다.

적을 물리치고, 보스를 쓰러뜨리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것이 익숙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점점 서사와 감정의 깊이를 갖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승리’가 아닌

‘선택’과 ‘의도’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단지 조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언더테일(Undertale)은 전례 없는 질문을 던진 게임이다.

“당신은 왜 싸우는가?” “살려줄 수 있었는데, 왜 죽였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게임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도덕성과 선택의 기준을 향하고 있다.

2015년, 

인디 게임 개발자 토비 폭스(Toby Fox)에 의해 만들어진 이 게임은 

독특한 그래픽과 BGM, 그리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한 캐릭터들로 

빠르게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진정한 파장은 

그 이면에 숨겨진 철학적 질문과 감정적 충격이었다. 

언더테일은 플레이어가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만들고, 

심지어 그 선택의 결과가 게임 외적인 죄책감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에 떨어진 인간이다. 

이 세계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은 대화를 할 수 있고, 

때로는 감정을 교류하거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플레이어는 그들을 공격하고 처치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더테일은 전통적인 게임 문법을 뒤흔든다. 

“게임이니까 죽여도 된다”는 익숙한 인식이 여기에서는 설 자리를 잃는다. 

도리어, 선택의 결과는 이야기 속 캐릭터들뿐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윤리적으로 플레이하고 있을까? 

게임이 묻는 이 질문은 단순한 상호작용을 넘어, 

인간의 도덕성과 공감능력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제 언더테일 속 세 가지 주요 플레이 루트를 중심으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깊이 탐구해보자.

언더테일, 당신의 선택은 얼마나 윤리적인가?
언더테일, 당신의 선택은 얼마나 윤리적인가?

 

 

 

너그러움의 길: 패시피스트 루트, 진정한 공감의 실천


패시피스트 루트(진 엔딩 루트)는 

언더테일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간주된다. 

이 루트를 선택한 플레이어는 

단 한 명의 몬스터도 죽이지 않고 게임을 진행한다. 

전투가 벌어져도 공격하지 않고, 

대화와 행동으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마음을 움직여 ‘전투 종료’를 유도한다. 

이 루트는 플레이어에게 끊임없는 인내와 이해심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몬스터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실수로 공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고,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마침내 폭력 없는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패시피스트 루트를 선택한 사람은 

단순히 ‘좋은 결말’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이야기의 인물 하나하나를 살아있는 존재처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드러낸다. 

이 루트의 매력은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있다. 

싸움이 아닌 대화로 상황을 해결하고, 

적이 아닌 친구로 다가가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타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쌓은 유대는 결국 플레이어 자신의 가치관과도 연결된다.

또한 이 루트는 언더테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가장 온전히 경험하게 만든다. 

주인공과 몬스터들 간의 신뢰와 정서적 교류는, 

단지 게임 속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관계 서사로 기능한다. 

플로위(Flowey)라는 캐릭터조차, 

이 루트에서는 놀라운 전환을 겪으며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특히 마지막 전투에서 펼쳐지는 연대와 협력의 장면은 

‘함께 살아간다’는 감동적인 주제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폭력 없는 서사도 얼마든지 극적인 감정선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결국 패시피스트 루트는 

윤리적 선택이 단지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이라는 매체가 

공감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플레이어는 점점 캐릭터를 위해 행동하게 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곧 자신의 감정이 되며, 

이 여정의 끝에서 깊은 정서적 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언더테일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한 가지를 조용히 말한다.

 “공감은 선택이 아니라 실천이다.”

 




무관심의 경계: 뉴트럴 루트, 우리의 무심한 선택들


뉴트럴 루트는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첫 번째 플레이에서 걷게 되는 길이다. 

몬스터들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살려주기도 하며, 

뚜렷한 기준 없이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한다. 

이 루트는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반영하는 듯한 복잡성을 지닌다.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때때로 편리함이나 감정에 따라 충동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뉴트럴 루트는 그런 우리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이 루트에서 우리는 평범하게 행동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무거운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일부 캐릭터들은 우리의 행동에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이들은 더는 믿음을 갖지 않게 된다. 

이는 우리가 평소 살아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쁜 의도가 없었어도 무관심이나 판단 유보, 

혹은 망설임이 때로는 상대에게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뉴트럴 루트는 이처럼 회색지대에 놓인 인간 심리를 정밀하게 포착해낸다.

또한 이 루트에서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자주 마주한다. 

왜 나는 그 캐릭터를 살리고, 다른 캐릭터는 죽였는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는가? 이 모순된 판단 기준은, 

언더테일이 던지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게임을 종료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는 ‘완성되지 않은 무언가’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곧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뉴트럴 루트는 인간의 ‘도덕적 편의주의’를 비추는 거울이다.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가장 인간적인 길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 숨은 무책임함도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 언더테일은 단지 ‘당신은 어떤 엔딩을 택했습니까?’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의 반복은,

곧 자기 성찰이라는 의미 있는 여운으로 이어진다.

 

 

 


파괴의 끝: 제노사이드 루트, 시스템과 윤리의 충돌


가장 충격적인 루트는 제노사이드 루트다. 

이 루트에서 플레이어는 

지하 세계의 모든 몬스터를 일부러 찾아가 죽여야 한다.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곳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철저히 사냥해야 한다. 

그 과정은 반복적이고, 감정적으로도 점점 무감각해진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던 플레이어도,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살육’을 추구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게임이 이 루트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루트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끝까지 진행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결말은 냉혹하고 잔인하다. 

주요 캐릭터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지하 세계는 어둠과 침묵으로 물든다. 

더 나아가, 이 루트 이후에는 

다른 루트를 플레이해도 게임이 이를 기억하며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언더테일은 그렇게 플레이어의 선택이 단순한 일회성 선택이 아님을 강조한다.

제노사이드 루트는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적을 죽이는가? 

단순한 재미?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아니면 시스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게임은 그동안 공격과 승리를 미덕처럼 여겼지만, 

언더테일은 그 ‘공식’을 파괴하며 묻는다. 

“정말로, 그들이 죽을 이유가 있었나?”

더욱 무서운 건, 

제노사이드 루트를 걷다 보면 처음의 죄책감은 무뎌지고, 

시스템적으로 학살하는 데 익숙해진다는 점이다. 

인간이 어떻게 비윤리적인 행위에 무감각해지는지를, 

이 게임은 차가울 정도로 정확히 재현한다.

언더테일은 단순한 인디 게임을 넘어서,

도덕성과 윤리, 공감과 무감각의 경계를 시험하는 실험장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단지 캐릭터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더테일을 플레이하는 순간, 우리는 ‘게임 속 인간’이 아니라

‘인간 속 게임’이라는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

게임이라는 시스템이 아무리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패시피스트 루트를 선택한 이들은 공감과 인내의 가치를 실천한 것이고, 

뉴트럴 루트를 걸은 이들은 자신의 모순을 마주한 것이며, 

제노사이드 루트를 택한 이들은 

‘무엇이 인간성을 파괴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준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당신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그 대답은 캐릭터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언더테일이 수많은 게임 중에서도 특별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