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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칼 끝에서 배운 인생: 왜 청춘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일까?

by 궁금해봄이6 2026. 7. 18.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의 서랍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빛바랜 앨범을 꺼내 보듯,

우리는 살아가며 문득문득 특정 시절의 공기를 그리워하곤 하지요.
제게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바로 그런 기억의 서랍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청춘을 인생의 황금기이자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포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시절을 관통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청춘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시간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

그리고 사랑도 꿈도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러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밤들이 가득한 시절이지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러한 청춘의 어두운 이면과 눈부신 찰나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내어

세대를 초월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수많은 이들의 '인생 작품'으로 꼽히며 방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비결은,

'모든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판타지'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우리는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집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피를 흘리며 훈련했던 나희도도,

집안의 몰락 속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백이진도

인생의 고비마다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이별 역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과 아쉬움을 남겼지요.

하지만 드라마는 우리에게 나직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이 원하던 결말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청춘이 과연 실패한 것일까?"라고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우리가 왜 그토록 이 작품에 열광했으며,

나희도와 백이진의 서사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인생의 지혜와 따뜻한 위안을 건네는지 차분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펜싱칼 끝에서 배운 인생: 왜 청춘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일까?
펜싱칼 끝에서 배운 인생: 왜 청춘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기록'일까?

 

뼈아픈 패배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실패의 품격'

드라마의 주인공 나희도는

결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천재 펜싱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한때 신동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슬럼프에 빠져 끝없는 패배를 맛보아야 했고,

좋아하던 학교 펜싱부마저 IMF라는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해체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코치는 그에게 "너의 시대가 네 꿈을 빼앗았다"고 말하며 포기를 권유하지요.

그러나 나희도는 주저앉는 대신 펜싱칼을 쥐고

다른 학교로의 전학을 도모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저는 제가 좋아하는 탁구 경기를 떠올렸습니다.

탁구대 앞에 서서 작은 라켓을 쥐고 상대방의 공을 받아치다 보면,

아무리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걸어도 테이블 구석을 벗어나 허무하게 실점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서툰 몸짓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공이 네트에 걸리거나 밖으로 날아갈 때,

우리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지요.

하지만 탁구 실력이 느는 유일한 방법은

그 미스 샷의 궤적을 복기하고 다시 라켓을 잡는 것뿐입니다.

나희도의 펜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경기에서 질 때마다 슬퍼하고 좌절하기보다,

자신의 패배를 기록한 오답 노트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상대방의 칼끝이 어디를 겨누었는지,

자신이 어느 순간에 마음이 흔들렸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거대한 경기장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청춘들은 취업이라는 좁은 문턱 앞에서 수없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중장년들은 사업의 실패나 예기치 못한 명퇴 앞에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그 순간에는 마치 내 인생 전체가 거대한 낙제점을 받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하지만 나희도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위대한 태도는

실패를 '인생의 종착지'가 아닌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단단함이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늘 졌지만, 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패배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패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한 뼘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녀가 훗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고난 천재성이나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무수한 패배의 순간마다 먼지를 털고 일어나 다시 검을 겨누었던

'회복탄력성'과 실패를 대하는 품격에 있었습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물은 눈부시지만,

그 꽃을 피워낸 힘은

결국 어두운 흙 속에서 견뎌낸 실패의 시간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사랑이 남긴 찬란한 유산과 삶의 성숙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본 많은 시청자들이 가장 큰 충격과 아쉬움을 토로했던 지점은

단연 두 주인공의 결말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우주였고,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 서로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었던 백이진과 나희도가

결국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이별을 고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찬란했던 로맨스가 해피엔딩으로 맺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들에게,

두 사람의 멀어짐은 마치 현실 세계의 이별만큼이나 아프고 야속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고개를 몇 번이고 넘어온 노년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이별은

결코 슬프기만 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가치 있는 마침표였습니다.

우리는 젊은 날,

사랑만 있다면 온 세상의 풍파를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처럼 호기롭게 덤벼들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가차 없습니다.

백이진이 기자로서 마주해야 했던 세상의 참혹함과 죄책감,

그리고 나희도가 운동선수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기다림은

두 사람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거대한 소외의 벽을 만들어냈습니다.

서로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게와 방향성이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또한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아픈 진실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헤어졌기 때문에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두 사람은 비록 부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백이진은 나희도의 거침없는 열정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시 불태웠고,

나희도는 백이진의 따뜻한 응원을 채찍 삼아

고독한 훈련의 시간을 버텨내어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만나기 전보다 서로를 만나고 난 후에 두 사람은 훨씬 더 나은 사람,

더 단단한 인격체로 성장해 있었던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유한하기에,

그 순간에 모든 진심을 다 쏟아부었기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나눴던 사랑은 비록 마침표를 찍었을지언정,

그 사람이 남겨놓은 마음의 결치와 성장의 기억은

평생 동안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각자 온전하게 완성해 나가기 위해

기꺼이 서로를 놓아주는 또 다른 형태의 성숙이자 존중이었음을

드라마는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공의 순간보다 찬란했던 평범한 일상의 행복론

드라마의 여운을 곱씹어 볼 때,

우리의 뇌리에 가장 먼저 스치는 장면은

나희도가 메달을 따고 단상 위에서 환호하는 영광의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섯 명의 청춘이 한여름에 수학여행을 떠나

바닷가에서 철없이 파도를 맞으며 웃던 장면,

학교 수도꼭지를 거꾸로 돌려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장난을 치던 순간,

혹은 편의점 앞에 나란히 앉아 초코우유를 마시며 실없는 농담을 나누던 소박한 일상들입니다.

 

우리는 늘 거창한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대기업에 취업하면,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하면 비로소 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유예하곤 하지요.

특히 성과 중심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오늘 하루의 평범한 일상은

성공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위해 기꺼이 희생되어야 마땅한 수단처럼 취급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보여주는 행복의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이 작품은 우리 인생을 가장 눈부시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성공의 훈장이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었던 평범하고 사소한 순간들의 합이라고 말합니다.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

친구들과 밤새 나누던 영양가 없는 수다,

힘들 때 어깨를 툭 치며 건네던 무뚝쩍한 위로 같은 것들이

시간이 흘러 인생의 가장 깊은 모퉁이에서 꺼내어 볼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의 보석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우며 오직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 일했고,

성공만이 인생의 유일한 정답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 돌이켜보면,

제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장면은 거창한 승진이나 성취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함께 공원에 나가 뒹굴었던 주말의 한때,

아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저녁 시간 같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장면들이었습니다.

 

청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이며,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여부보다

그 길을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함께 걸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드라마는 청춘들의 웃음소리를 통해 아프도록 아름답게 증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