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재난을 '공평한 불행'이라고 말합니다.
지진, 해일,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었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자연재해와 질병은 사람의 신분이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현실도 그럴까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이들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이자 하층민이었습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단단한 성벽 뒤로 숨거나 비
축해 둔 자원을 통해 살아남을 방법을 찾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재난 자체가 곧 생존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바로 이 날카로운 현실적 통찰을 조선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과
'좀비(생사역)'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 수작입니다.
'킹덤'의 세계관 안에서 좀비 바이러스,
즉 역병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굶주림'에서 비롯됩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우연히 인육을 섭취하게 되면서
통제 불능의 역병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물어뜯는 공포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탐욕,
특히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 계급을 어떻게 사지로 내몰고 희생양으로 삼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본 글에서는
드라마 '킹덤' 속에서 재난이라는 극단적인 위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보여주는 상반된 모습과
그 안에 숨겨진 신분제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킹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좀비가 된 백성들" : 굶주림이 낳은 비극과 차별의 시작
드라마 '킹덤'의 첫 장을 여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굶주림'입니다.
작중 백성들이 괴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유니크한 환자에게 물려서가 아닙니다.
왜란 직후 황폐해진 국토에서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과 무관심 속에 방치된 동래 지율헌의 병자들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으로 만든 국을 고기국인 줄 알고 먹게 되고,
이로 인해 변종 역병이 폭발적으로 확산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역병의 최초 확산자가 가장 낮고 굶주린 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왕실과 고위 관료들은 궁궐 안에서 산해진미를 즐기며 권력 암투를 벌이는 동안,
지방의 백성들은 풀뿌리를 캐 먹다 못해 썩어가는 시신에까지 손을 대야 했습니다.
드라마는 백성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들을 괴물로 만든 진짜 원흉이 좀비 바이러스가 아니라
지배층의 '정치적 방임'과 '구휼의 부재'라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도, 나라도 아닌 오직 밥 한 그릇이다."
주인공 이창(주지훈 분)의 이 대사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백성들을 굶주림이라는 사지로 몰아넣은 사회 구조야말로
역병의 진정한 숙주였던 셈입니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 먹었고, 그 결과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괴물이 된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사냥당하고 버려지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킹덤'은 역병의 발생 원인에서부터
계급 간의 극명한 격차와 불평등을 배치함으로써,
재난의 출발선 자체가 신분에 따라 다르게 그어진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병이 발발한 이후에도 계급에 따른 차별은 멈추지 않습니다.
양반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역병의 확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곳간을 잠그고 음식을 독점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원의 분배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불평등이 어떻게 하층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지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양반의 시신은 태울 수 없다" : 죽음 앞에서도 포기 못 하는 기득권의 허례허식
역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드라마는 지배 계급의 무능함과 이기주의를 풍자적인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역병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양반과 상민의 차별'입니다.
의녀 서비(배두나 분)와 이창은
역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낮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생사역(좀비)들의 시신을
모두 불태워야(화장)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래의 양반들과 이방을 비롯한 관료들은 이에 격렬히 반대합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할 수 없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적 명분과,
감히 상민들의 시신과 양반의 시신을
한데 섞어 불태울 수 없다는 신분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당장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사람을 물어뜯는 괴물들의 위협보다,
자신들의 가문이 가진 명예와 신분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
더 큰 공포였던 것입니다.
결국 양반들은 자신들 가문의 시신을 따로 빼돌려 안치했고,
밤이 되자 그 시신들이 다시 눈을 떠 사람들을 공격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야 맙니다.
이 에피소드는 기득권층이 가진 '허례허식'과 '선민의식'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입니다.
이들은 위기 극복을 위한 통일된 시스템에 협조하기는커녕,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방역 체계를 무너뜨립니다.
더 나아가, 관아의 우두머리인 조학주(류승룡 분)와 해원 조씨 일가는
역병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이를 자신들의 권력 가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합니다.
왕이 좀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의 죽음을 숨기고
생사초를 통해 억지로 숨만 붙여놓는 행위는
계급의 꼭대기에 선 자들이 부리는 탐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백성의 목숨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성문을 닫아걸어라" : 생존의 경계선이 된 성벽과 철저한 배제의 논리
역병이 경상도 전역을 덮치자,
지배층이 선택한 해결책은 역병의 치료나 백성의 구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격리와 배제'였습니다.
상주성을 지키던 관료들과 해원 조씨 세력은
역병이 한양으로 상경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문경새재의 성문을 굳게 닫아걸어 버립니다.
문제는 그 성문 밖에 수많은 피난민(백성)들이 남아있었다는 점입니다.
성문 안쪽은 안전한 양반들과 군사들의 공간이었고,
성문 바깥은 언제 괴물에게 물려 죽을지 모르는 백성들의 지옥이었습니다.
살려달라며 성문을 두드리는 백성들의 절규를 외면한 채,
성벽 위에서 화살을 겨누는 군사들의 모습은
계급 사회가 재난을 대하는 가장 잔인한 아키텍처를 상징합니다.
성벽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자'와 '버려져도 되는 자'를 가르는
비정한 계급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안전 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방화벽(Firewall) 삼아 사지에 방치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낙후된 지역이나 취약 계층이 다니는 공간이
가장 먼저 고립되고 방치되는 현상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반면, 세자 이창은 이 부조리한 계급의 경계선을 깨부수려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궁궐이라는 가장 안전한 계급의 정점을 버리고
스스로 사지로 내려와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합니다.
이창은 성문을 열어 피난민들을 안으로 들이고,
양반이든 상민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무기를 들고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따르라!"
이창의 이러한 행보는
기존의 썩어빠진 계급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재난 앞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진정한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킹덤'은 성문을 닫아걸고 백성을 배제하려는 자들과,
그 성문을 열고 모두를 구하려는 자들의 대립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차별과 배제가 아닌 '연대와 책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