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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 링은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게 만드는가?

by 궁금해봄이6 2025. 8. 1.

 

게임에서 죽음은 종종 패배의 상징이자,

다시 시작하라는 경고처럼 다가온다.

많은 게임들은

'죽음'을 최소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장치로 다루지만,

프롬소프트웨어의 작품 세계는 다르다.

그 중에서도 ‘엘든 링(Elden Ring)’은 죽음을 단순한 실패가 아닌,

게임 플레이의 중심 서사이자 철학으로 끌어올린다.

 

이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은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좌절하거나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넘어서면,

어느새 그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성장과 내면의 승화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엘든 링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죽음을 안긴다. 

보스에게 한 방에 쓰러지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습이나 독에 중독되어 허무하게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반복은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 감춰진 의미를 곱씹게 하며, 

죽음을 향한 우리의 태도, 그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며, 

그것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탐험하게 된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주제다. 

하지만 엘든 링은 이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임을 가르쳐준다. 

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죽음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일종의 체험 공간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넘어, 

죽음 그 자체를 수용하게 되는 법을 배워간다.

엘든 링은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게 만드는가?
엘든 링은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게 만드는가?

 

 


죽음을 반복하는 세계, 죽음을 재해석하는 유저


엘든 링의 세계는 ‘죽음’을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만든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초보자는 

압도적인 적 앞에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죽는다. 

여기서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튜토리얼이나 친절한 장치로 유저를 보호했겠지만, 

엘든 링은 오히려 그 첫 죽음을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았다. 

이는 죽음을 통한 학습이 시작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죽음이 거듭되면서 유저는 패턴을 익히고, 

리듬을 느끼며, 결국에는 보스를 넘어서는 자신의 성장을 경험한다. 

이는 마치 유년기를 지나며 삶의 고통을 배우고, 

그것을 극복하며 성숙해지는 인간의 성장과정과도 닮아 있다. 

죽음은 유저에게 좌절이 아닌, 피드백이자 메시지다. 

“이 방향은 아니야.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 

그렇게 유저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 게임의 ‘부활’ 시스템 역시 

죽음의 수용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죽으면 일정한 위치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이전의 죽음이 남긴 ‘룬’을 회수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실패 후 다시 일어나 

자신의 경험을 되짚는 일과 유사하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흔적을 통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유저로 하여금 

죽음을 ‘실패’로 보지 않게 만든다. 

“또 죽었네, 다음엔 다르게 해봐야지.”라는 말이 일상이 되며,

 유저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익숙해지고’, 나아가 ‘이해하게’ 된다. 

결국 엘든 링은 유저가 죽음을 내면화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체험 공간이 된다.

죽음이 더는 패배가 아닌 ‘수단’이 되고, 

실패가 아닌 ‘진행’으로 전환되는 이 경험은 

단순한 게임적 성취를 넘어선다. 

유저는 점차 죽음을 통해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능력을 얻게 된다. 

마치 삶에서의 시행착오처럼, 

죽음을 반복하며 얻는 통찰은 오히려 생존 전략이 된다. 

엘든 링은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설계해 

유저 스스로 죽음과 친숙해지고, 

나아가 죽음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게임이 우리 인식 깊숙이 침투하는 지점이며,

 엘든 링만의 독보적인 철학이다.


 


세계관 속 죽음의 상징성과 철학적 메시지


엘든 링의 세계관은 

‘황금률’과 ‘붕괴된 질서’ 위에 세워진 신화적 구조를 가진다. 

이 세계에서는 육체적 죽음뿐 아니라, 존재론적 죽음, 

기억의 소멸, 이름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세계와 자아의 균열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게임 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음을 거부하려 한다. 

예를 들어, 말레니아는 끝없는 부패 속에서도 

스스로 죽음을 수용하지 않으며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죽음을 거부함으로써 

더욱 비극적인 삶을 연장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반면, 어떤 인물은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떠난다. 

그 차이는 죽음이라는 필연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경험하면서, 

죽음이 단순한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체감하게 된다. 

죽음은 존재를 바꾸는 계기이고, 

때로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의미 있다’는 문장이, 

이 세계 안에서는 감정적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이러한 철학은 단순히 텍스트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폐허와 붕괴된 성소, 시체가 방치된 전장, 

조용히 피어나는 꽃의 이미지 등 

시각적 구성 역시 죽음과 재생을 시적으로 상징화한다. 

엘든 링은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감각과 분위기를 플레이어가 ‘느끼게’ 만들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철학적 서사의 진정한 구현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시각적, 서사적 장치들을 마주할 때마다 

무언의 죽음 철학과 조우하게 된다. 

정면으로 전달되는 설명이 아니라, 

풍경 속의 잔해, 인물들의 침묵, 음악의 여운 등을 통해 

죽음은 상징으로 스며든다. 

그것은 마치 우리 현실에서도 죽음이 항상 명시되지 않고,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과 닮아 있다. 

따라서 엘든 링은 플레이어의 감각을 자극해, 

죽음을 해석하게 하는 능동적 참여를 유도한다. 

이로써 게임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체험하는 철학’이 되며,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정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플레이어의 내면 변화와 현실의 죽음 인식


엘든 링은 단순한 게임 그 이상이다. 

반복되는 실패와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성공을 경험하면서 

플레이어는 점점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스스로에게도 투영하게 된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죽지?”라며 짜증을 내던 유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건 내 실수야”, 

“다음에는 잘해보자”라는 식의 반응으로 바뀐다. 

이는 단순한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실패와 고통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 속 삶의 태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고통을 회피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되묻게 된다. 

나아가, 누군가의 상실이나 부고 앞에서도 

단순히 비극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와 기억, 

의미를 성찰할 수 있게 되는 정서적 근력을 길러준다. 

게임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하며 살아남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쌓아온 경험은, 

실제 삶의 위기 상황에서도 주체적인 자세를 유지하게 만든다.

또한, 커뮤니티 내에서 공유되는 죽음의 순간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얼마나 허무하게 죽었는지, 

어떤 패턴을 간파하지 못해 무너졌는지 등을 공유하면서

 ‘죽음’이라는 경험을 하나의 놀이로 전환한다. 

이는 죽음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며 그

무게를 분산시키는 사회적 태도와도 닮아 있다.

엘든 링은 죽음을 주제로 한 게임이지만, 

그 죽음을 ‘사망’이 아닌 ‘통과의례’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반복하며 플레이어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과 화해하고, 

삶을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은 죽음을 겁주는 대신, 

죽음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조용히 알려준다.

플레이어는 결국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단지 게임 내 경험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다양한 위기나 상실 앞에서도 

더 침착하고 성숙한 태도를 유도한다. 

 

엘든 링은 유저로 하여금 

죽음을 감정적으로 거리 두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안내한다. 

그렇게 죽음은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 

결국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유저는 어느새 죽음을 

두려움보다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엘든 링은 단지 고난이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은 우리에게 묻는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수많은 죽음과 실패, 반복되는 도전 속에서

플레이어는 점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그 의미를 곱씹고, 수용하며,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게임 메커니즘의 익숙함을 넘어서,

인식의 전환과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게임 경험은 현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고통에도 의미가 있으며, 죽음조차 끝이 아니라는 감각은, 

현대 사회가 감추려 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조용히 비추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죽음을 껴안는다는 것은 곧,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엘든 링은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상의 교실이 되어준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유저의 여정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끝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끝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가 삶의 품격을 결정한다. 

 

엘든 링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