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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에 담긴 계급의 상징 언어

by 궁금해봄이6 2025. 8. 1.

 

대한민국 사회는 공식적으로는 

‘평등’과 ‘기회균등’을 기치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강고한 계급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현실은 

언어, 문화, 소비, 행동, 직업, 공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K-드라마는 

이러한 계급의 층위를 우회적으로, 

그러나 매우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장르다. 

시청자는 "부자"나 "가난한 자"라는 표현 없이도, 

등장인물의 대사, 행동, 배경, 옷차림만으로 

그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직감하게 된다.


이는 바로 ‘계급의 상징 언어’ 때문이다. 

말로는 언급되지 않지만, 시청자는 특정한 요소들을 통해 

그 인물의 위치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 언어는 단순히 드라마 속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사회의 시선, 구분, 욕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며, 

동시에 이질감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서사 장치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K-드라마 속에서 어떤 상징 언어들이 

계급을 구별짓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분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계급을 어떻게 인식하고, 재생산하며,

은폐하는지를 들여다보는 렌즈가 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언어,

즉 계급의 상징 언어를 제대로 읽는 순간,

우리는 드라마가 그리는 사회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K-드라마에 담긴 계급의 상징 언어
K-드라마에 담긴 계급의 상징 언어

 

 


배경 공간이 말하는 계급: 건물, 방, 거리의 언어


K-드라마에서 인물의 계급을 가장 먼저 말해주는 것은 공간이다. 

인물의 집, 방, 회사, 동네 등은 

말보다 빠르게 시청자에게 그 인물의 계급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는 

초호화 타운하우스 단지 '스카이캐슬'에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뚜렷한 공간적 분리가 나타난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특권과 위계의 상징이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는 

고급 주택가와 반지하에 사는 인물의 대비를 통해 

계급 격차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반지하라는 구조물은 

영화 「기생충」에서도 계급의 은유로 쓰였듯이, 

한국 대중문화에서 빈곤을 상징하는 코드로 자주 활용된다. 

거실의 크기, 책상의 유무, 창문의 방향까지도 

계급의 상징 언어가 된다.

또한 회사 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회장의 집무실은 

넓고 정갈하며 고급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고, 

비서실이나 실무직 사원의 사무공간은 좁고 삭막하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앉은 자리와 

임원들이 앉는 공간의 거리감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권력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렇듯 K-드라마는 계급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공간의 연출을 통해 ‘눈으로’ 계급을 읽게 만든다.

더 나아가, 거리의 풍경과 동네의 구조, 

식당의 종류와 분위기 등도 계급의 상징 언어가 된다. 

동네 골목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과,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이는 장면은 

단지 음식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관과 인간관계, 사회적 위치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 모든 공간의 디테일은 ‘계급’이라는 말 대신 

계급을 말하게 만드는 상징 언어의 강력한 수단이다.

이러한 공간 연출은 

시청자에게 단순한 배경 이상의 정보를 전달한다. 

예컨대, 고급 빌라나 펜트하우스에 설치된 

대형 유리창, 예술 작품, 정원, 호텔 같은 주방은 

인물의 삶이 얼마나 여유롭고 세련된지를 암시한다. 

반면, 낡은 벽지와 전등, 공간이 부족한 협소한 구조는 

인물의 현실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심지어 화장실의 위치와 크기, 거실 창밖 풍경조차도 

계급 차이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또한 자녀가 공부하는 공간에서도 계급은 드러난다. 

넓은 책상, 고급 조명, 과외용 화이트보드가 설치된 

상류층 자녀의 방은 학습의 효율보다 

‘계급 유지’를 위한 시스템의 일부처럼 보인다. 

반면 작은 테이블 하나 놓인 식탁에서

 동생과 함께 공부하는 하류층 자녀의 모습은 

교육 기회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말투, 억양, 어휘 선택이 드러내는 위계


공간이 인물의 계급을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언어는 계급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언어는 단순한 말의 내용이 아니다. 

말투, 억양, 어휘의 선택, 심지어 말의 속도와 침묵까지 포함된다. 

K-드라마 속에서 상류층 인물들은 

대체로 느린 말투, 단정한 어휘, 간결한 표현을 사용한다. 

반면 하류층 인물들은 

감정적이고, 속도감 있고, 때로는 거친 언어를 구사한다.

예컨대, 「펜트하우스」에서는 

상류층 인물들이 사용하는 말투는 다소 절제되어 있으며, 

고급 단어와 외래어, 영어 표현이 잦다. 

"브리핑은 받았나요?", "컨펌하겠습니다" 등의 표현은 

상류층의 언어 습관으로 클리셰화되었고, 

이들은 심지어 자녀에게도 높은 문어체 말투를 유지한다. 

반면, 서민 계층 인물들은 

감탄사나 욕설, 생생한 일상어가 섞인 표현을 사용하며, 

말의 강도도 훨씬 세다.

또한, 상류층 인물들은 

‘침묵’을 통해 권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말이 많지 않지만, 

적절한 순간에 단 한마디로 상황을 장악하는 방식은 

언어가 권력의 도구가 되는 전형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 속 황시목 검사는 말수가 적지만, 

그 말의 무게와 맥락은 청자의 태도까지 바꾼다. 

이처럼 침묵조차도 상징 언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억양은 지역색이나 교양 수준, 

감정 제어력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사투리’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계급적 코드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사투리를 쓰는 인물은 종종 

농촌 출신, 낮은 학력, 또는 ‘따뜻한 인물’로 묘사되며, 

표준어를 구사하는 인물은 

냉철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포지셔닝된다. 

억양과 어휘의 선택은, 

말 자체보다 더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대화에서 사용하는 높임말과 반말의 구사 여부도 

계급과 권력 관계를 암시한다. 

상류층 인물은 대부분 타인에게 경어를 사용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강압적 반말로 권위를 행사한다. 

이는 ‘공손하지만 위압적인’ 이중적 언어 전략이다. 

반대로 하류층 인물은 상

류층과 대화할 때 스스로 낮추는 말투를 사용하거나, 

어색한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언어 속의 불균형이 더욱 부각된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언어는 현실 세계의 직장 내 위계, 

학교 내 서열, 가정 내 부모 자식 관계까지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상사는 

부드러운 어조 속에서도 명령형 문장을 사용하고, 

신입 사원은 과도한 존대어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러한 언어 구조는 

상하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정착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말투와 어휘는 

인물의 정체성과 동시에 그가 속한 계급적 위치를 

비언어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다.

 

 


패션과 태도, ‘보디랭귀지’로 계급을 말하다


K-드라마의 의상 연출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다. 

패션은 계급을 구별짓는 강력한 상징 언어다. 

고급 브랜드의 재킷, 클래식한 주얼리, 절제된 컬러, 

균형 잡힌 실루엣은 상류층의 ‘품위’를 상징한다. 

반면, 저렴한 소재의 옷, 투박한 색 조합, 실용성 위주의 스타일은 

서민적 삶의 현실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마인」에서는 

상류층 여성들이 늘 고급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지만, 

브랜드명이 직접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실루엣, 색감, 착용한 장소가 

브랜드 자체보다 더 강력한 계급 상징으로 작용한다. 

상류층은 심지어 ‘운동복’조차도 고급스럽게 스타일링된다. 

반면 서민층은 브랜드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한 옷차림으로, 

편안하면서도 조금은 무심한 스타일을 취한다.

뿐만 아니라, 태도와 보디랭귀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류층 인물은 대체로 곧은 자세, 느릿한 걸음걸이, 

적은 손동작, 정제된 표정을 유지한다. 

감정의 기복이 적고,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하류층 인물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손동작이 많고, 표정 변화가 크다. 

이는 단순한 연기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드라마가 설계한 계급적 이미지다.

한편, 드라마 속에서 ‘응시’는 강력한 권력의 제스처로 활용된다. 

상류층 인물은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데 반해, 

하류층 인물은 시선을 피하거나 숙이는 장면이 많다. 

이는 언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적 지위와 권력 관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비언어적 상징 언어다.

결국 옷, 제스처, 표정, 걸음걸이, 응시까지. 

이 모든 것은 계급이라는 단어 없이도 계급을 이야기하는

 K-드라마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자 상징 언어의 총체다.

K-드라마는 계급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하지 않음 속에,

오히려 더 강력한 계급의 상징 언어가 작동한다.

공간, 말투, 의상, 제스처, 심지어 침묵까지 —

이 모든 요소는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계급을 ‘해석’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얼마나 깊고 은밀하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한 상징 언어는 

때로는 계급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서사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에 대한 환상을 제공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언어들이 현실에서 우리가 계급을 어떻게 인식하고, 

구분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K-드라마는 현실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장르이지만, 

그 과장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따라서 K-드라마의 계급 묘사를 

단순한 극적 장치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말로는 숨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위계’의 지도이며, 

시청자가 무의식 중에 학습하고 있는 

계급 감각의 교과서일 수도 있다. 

결국 계급은 말하지 않아도, 

드라마는 끊임없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상징 언어를 ‘읽는’ 훈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