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는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죠.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면서
"불편했다", "무겁다",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이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이 영화가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일까요,
아니면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 때문일까요?
사실 조커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정면으로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조커가 왜 불편하면서도 강렬한지,
그 이유를 심리학적, 사회학적,
영화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제와 인간 본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악당의 인간화: 공감과 거부감 사이의 줄타기
조커가 불편한 첫 번째 이유는
악당을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악당은 명확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악하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혔거나,
세상을 지배하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죠.
관객은 편안하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조커는 다릅니다.
우리는 아서 플렉이라는 한 남자가
어떻게 조커가 되어가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봅니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어머니를 돌보며,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는 평범한(어쩌면 평범 이하의) 사람입니다.
그가 겪는 모멸감, 폭력, 무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한 번쯤 경험했거나 목격한 것들입니다.
여기서 불편함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아서가 지하철에서 폭행당하는 장면을 보며 분노를 느끼고,
토크쇼 진행자가 그를 조롱하는 장면에서 수치심을 느낍니다.
어느새 우리는 살인자가 될 사람에게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순간 관객은 도덕적 혼란을 경험합니다.
"나는 지금 살인자의 편을 들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도덕적 신념("살인은 나쁘다")과
감정적 반응("아서가 불쌍하다")이 충돌하면서 내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죠.
영화는 이 불편함을 해소시켜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아서가 첫 살인을 저지른 후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그 순간 그는 해방감을 느끼고,
영화는 그것을 아름답게 촬영합니다.
관객은 "이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장면의 미학에 끌리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선과 악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가?
환경과 상황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것 아닌가?
영화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사회 시스템의 실패와 현실의 반영
조커가 강렬한 두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 속 문제들은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화는 복지 시스템의 붕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서가 상담을 받던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예산 삭감으로 중단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상담사는 아서에게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이 한 문장은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절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신건강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아서는 명백히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지만,
약을 구할 수도 없고,
상담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여전히 낙인으로 작용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빈부격차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토마스 웨인으로 대표되는 상류층은 가난한 사람들을
"광대(Clowns)"라고 부르며 멸시합니다.
그들의 고통은 자기 책임이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죠.
이런 계급 간의 단절과 혐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미디어의 역할도 날카롭게 비판받습니다.
머레이 프랭클린 쇼는 아서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합니다.
그의 실패한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을 전국에 방송하며 조롱하죠.
현대의 SNS 문화, 악플 문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와 고통을 클릭 한 번으로 소비하고 있지 않나요?
가장 불편한 지점은 이겁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저 사회가 문제야"라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숙자에 대한 무관심,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약자에 대한 조롱, 빈부격차 심화.
이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실패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아서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조커가 된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만든 괴물이기도 합니다.
이 양가적 책임의 문제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영화적 장치가 만드는 몰입과 불안
조커의 강렬함은 뛰어난 영화적 기법에서도 나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관객을 아서의 시점 안에 가두고,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는 20kg 이상을 감량하며 아서의 병적인 몸을 만들었고,
통제할 수 없는 웃음 장애를 소름 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연기했습니다.
그 웃음은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고통의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하고,
그는 더욱 고립됩니다.
피닉스는 몸짓 하나, 시선 하나로 아서의 내적 붕괴를 표현해냅니다.
촬영과 색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어둡고 탁한 색조를 사용합니다.
고담시는 쓰레기로 가득하고,
항상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씨입니다.
이런 시각적 우울함은 아서의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반대로 아서가 조커로 변해갈수록 화면은 점점 더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띱니다.
빨간 양복, 녹색 머리, 하얀 얼굴 페인트는
그가 "진짜 자신"을 찾았다는 왜곡된 해방감을 시각화합니다.
음악은 더욱 교묘합니다.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첼로 중심 스코어는 무겁고 불안합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편한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조작합니다.
아서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들을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무겁게 계단을 올라가지만,
조커가 된 후에는 춤추며 계단을 내려옵니다.
같은 장소, 다른 의미. 음악은 이 변화를 극대화합니다.
가장 영리한 장치는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기법입니다.
영화는 아서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그가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이웃 소피와의 로맨스는 모두 그의 망상이었고,
어머니에 대한 진실도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객은 무엇이 진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불확실성은 깊은 불안을 만듭니다.
우리가 본 것 중 무엇이 진짜였을까?
마지막 장면의 아서는 정말로 사회를 뒤흔든 혁명의 아이콘일까,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모든 것을 상상한 것일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 모호함이 영화를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확실한 결론을 원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생각하고, 해석하고, 불편해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예술 영화의 힘입니다.
영화 조커가 불편하지만 강렬한 이유는
단순히 폭력적이거나 어둡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첫째,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줍니다.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우리 사회가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둘째,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복지 시스템의 붕괴, 정신건강에 대한 무관심, 빈부격차, 미디어의 폭력성.
이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입니다.
셋째, 뛰어난 영화적 기법으로 관객을 아서의 내면 깊숙이 끌어들입니다.
우리는 그의 고통을 느끼고,
그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며,
바로 그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아서 플렉이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의 무관심이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조커는 단순한 악당 영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이며,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입니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래서 강렬한 영화. 그것이 바로 조커입니다.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며 무엇을 느꼈나요?
그리고 그 불편함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요?
이것이 바로 조커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