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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이유

by 궁금해봄이6 2025. 10. 28.

어릴 적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보았다.
그때의 세상은 거대하고 낯설었으며,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무섭기까지 했다.
벽에 비친 그림자가 괴물처럼 느껴지고,

어른들의 말투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처럼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성장했고,

이성은 그런 감정들을 “유치한 공포”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 공포는 사라졌을까.

 

게임 리틀 나이트메어2(Little Nightmares II) 는

이 질문에 깊고도 섬세한 방식으로 답한다.
겉으로 보면 이 게임은 단순한 공포 퍼즐 플랫포머다.
작고 연약한 아이가 괴기스럽고 불길한 세상을 헤쳐 나가며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게임은 단순한 ‘공포 게임’이 아니다.
그 속에는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었던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촘촘히 숨겨져 있다.


어린 시절 느꼈던 공포를 시각화한 듯한 세계,

인간관계의 모순을 은유하는 캐릭터,
그리고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외면했던 심리적 진실들이

게임 곳곳에서 되살아난다.

 

특히 리틀 나이트메어2는

공포를 ‘무서움’이라는 표면적 감정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정서적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에서 느끼는 압박감,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그리고 믿었던 존재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상실감이

모두 하나의 악몽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할수록

“이건 단순히 무서운 게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마치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감정들이

다시 깨어나는 경험과도 같다.

이 게임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이유
이 게임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이유

 

‘작아진 나’와 ‘거대해진 세계’: 공포의 구조

리틀 나이트메어2의 첫인상은 “작다”는 것이다.
주인공 모노(Mono)는 작은 몸집에 얼굴조차 가려진 아이이며,
그가 마주하는 세계는 언제나 자신보다 거대하고 위압적이다.


책상, 의자, 문고리 하나조차도 너무 커서

오르거나 통과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이 물리적 비율의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

즉 ‘작아진 나’와 ‘거대해진 세계’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세상은 언제나 너무 크고 이해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너무 작고 무력하다.
어른들이 쉽게 여기는 일상적인 사물도 아이에게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높은 계단, 낯선 얼굴, 낯익지 않은 어두운 방…

모두가 괴물처럼 느껴진다.

 

게임 속 적들은 이런 ‘거대함의 공포’를 극단적으로 구현한다.
학교의 교사는 기괴하게 늘어진 목을 가지고 학생들을 감시하며,
병원의 의사는 시체를 조립하는 기계 같은 존재다.
이들은 단지 무섭기 위해 만들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가 느끼는 ‘어른의 존재감’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거대한 존재들은 언제나 감시하고, 통제하며, 순응을 요구한다.
아이 입장에서 그것은 괴물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리틀 나이트메어2는 공간 자체를 공포의 상징으로 활용한다.
좁고 어두운 통로,

끝을 알 수 없는 복도,

불안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들은
우리가 기억 속에서 느꼈던 “어두운 방의 공포”를 그대로 불러온다.
이는 단순히 무서움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이에게 ‘공간’은 곧 ‘불안’이며,
그 불안은 언제나 상상력과 결합하여 두려움으로 증폭된다.

 

이처럼 리틀 나이트메어2의 세계는 아이의 시선에서 재구성된 현실이다.
그 안에서 공포란 괴물의 공격이 아니라
‘작아진 나’와 ‘커진 세계’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이 관계를 체험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
어린 시절의 감정 구조를 다시 느끼게 된다.

 

 

동반자와 배신: 관계 속 두려움의 은유

리틀 나이트메어2에서 가장 강렬한 서사는

모노와 식스(Six) 사이의 관계다.
두 인물은 처음엔 서로를 돕고 의지한다.
낯선 세계에서 유일한 동료이며,
함께라면 어떤 공포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 관계는 결말을 향해 갈수록 뒤틀리고,
마침내 충격적인 배신으로 끝을 맺는다.

 

식스의 배신은 단순한 반전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 두려움’이라는 또 다른 감정을 은유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타인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특히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낸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느끼는 충격은 어른이 된 후의 배신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세상은 믿을 수 없다”는 감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식스의 선택은 바로 이 감정을 상징한다.
함께 지옥 같은 세계를 헤쳐왔음에도,
식스는 마지막 순간 모노를 붙잡지 않는다.
이 장면은 플레이어에게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관계란 언제나 불안정하다”는 진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식스의 변화는 성장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은 신뢰와 배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우리 곁에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관계의 본질을 깨닫는다.

게임이 그려내는 관계의 파괴는 결국 ‘성장의 상처’이며,
이는 현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감정이다.

 

리틀 나이트메어2는 단순히 무서운 괴물만 보여주는 게임이 아니다.
그 공포는 사람 사이에서도 만들어진다.
믿음이 무너질 때,

관계가 변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악몽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악몽은 아이의 마음속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는다.

 

 

미디어 타워와 현실의 은유: 공포는 성장의 언어 

게임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시그널 타워(Signal Tower)’는
리틀 나이트메어2의 핵심 상징이다.
이 타워는 도시 전체를 통제하며,
사람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만드는 신호를 발산한다.
거대한 스크린 속 이미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그들은 점점 자아를 잃어간다.

이 장면은 단순한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구조와,
아이들이 자라며 마주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은유한다.


학교, 미디어, 사회 규범, 가족의 기대…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을 조종하고 길들이는 신호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점점 그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모노가 타워로 향하는 여정은
결국 자신을 억압하는 시스템과 맞서는 성장의 여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형태의 공포를 경험한다.
그것은 괴물이나 어두운 복도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다.
자신이 변해버리는 것,
자신이 더 이상 과거의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공포다.

 

리틀 나이트메어2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노는 결국 타워의 일부가 되고,
시간이 지나 그는 악몽의 일부로 변한다.
이는 “공포는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이자,
“성장은 공포를 흡수한 존재가 되는 과정”이라는 역설이다.

 

우리는 성장하며 두려움을 이겨낸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꾸어 우리 안에 남고,
때로는 우리를 보호하고, 때로는 우리를 지배한다.
리틀 나이트메어2는 이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공포는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리틀 나이트메어2는 단순한 호러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래전에 잊었다고 믿었던 감정의 풍경을 다시 불러온다.
작고 연약했던 나,

거대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
믿음과 배신이 뒤엉킨 관계,
그리고 우리를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까지.


이 게임의 모든 요소는 ‘유년기의 공포’를 정교한 은유로 재현한다.

놀라운 점은,

그 공포가 단순히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낯설 만큼 익숙하고,
멀리 있다고 믿었던 과거가 사실은 지금도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렇기에 리틀 나이트메어2를 경험하는 일은
단순히 악몽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다.

 

성장이란 어쩌면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무서움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리틀 나이트메어2는

이 진실을 가장 어둡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린 나’를 다시 안아주는 일과도 같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공포란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여정에서 반드시 마주해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