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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함조차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가 설계한 감정의 심리학

by 궁금해봄이6 2025. 9. 11.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우리는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끊임없는 충돌과 불편함을 경험한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작품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시청자에게 단순한 공포나 긴장을 넘어서는 불쾌감을 설계해 전달한다.

보통 드라마는 시청자의 몰입과 즐거움을 위해 기획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의 전략을 택한다.
극 중 인물들의 시선, 대사, 공간의 질감, 심지어 사소한 행동까지도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느끼게끔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서스펜스나 스릴러적 재미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사회적 관계의 근본을 건드리는 감정적 장치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느끼는 불쾌함은 사실 낯선 경험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의 무심한 시선, 

애매한 친절, 혹은 과도한 관심은 종종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불편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듯한 본능적인 감정일 수 있다.
작품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리며, 

시청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타인은 지옥이다’의 감정 설계는 

단순히 드라마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불안을 드러내는 심리 실험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불쾌함을 기반으로 한 감정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시청자에게 어떤 체험을 남겼는지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려 한다.

불쾌함조차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가 설계한 감정의 심리학
불쾌함조차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가 설계한 감정의 심리학

 


공간의 감정 설계 – 닫힌 원룸이 주는 불쾌한 압박

 

‘타인은 지옥이다’의 주요 무대는 좁고 낡은 고시원이다.
이 공간은 물리적으로 닫혀 있고, 

시각적으로도 어둡고 답답하다.
좁은 복도와 삐걱거리는 문, 

낮은 천장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시청자의 감각을 직접 자극한다.

드라마 속 카메라는 

종종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앵글을 사용해 안정감을 무너뜨린다.
또한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면서도 갑작스럽게 멈추거나, 

특정 인물을 과도하게 클로즈업해 시선을 강제로 잡아둔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갇힌 듯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이 공간은 타인과의 불편한 공존을 상징한다.
얇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 

낯선 이웃들의 미묘한 눈빛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불안을 형상화한다.
시청자는 이 환경을 보며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동시에 현실 속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주거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심리적 장벽을 형성한다.
좁은 방에 갇혀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사회 속에서 고립된 개인의 초상을 은유한다.
특히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발소리, 

기침 소리, 가끔은 알 수 없는 웅성거림은 

우리가 타인과 단절될 수 없음을 각인시킨다.

이때 느껴지는 불쾌감은 단순한 공간적 답답함을 넘어서 

사회적 고립의 불안을 자극한다.
시청자는 화면 속 어둠과 소음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일상 속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와 억지로 함께 있어야 하는 순간, 

혹은 피하고 싶은 타인의 기척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간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감정을 조율하는 강력한 장치로 작용한다.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이 효과를 강화한다.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는 롱테이크 장면이나, 

갑작스럽게 뒤를 잡아채는 듯한 클로즈업은 

시청자에게 육체적 압박을 준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마치 시청자가 직접 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을 유도하며,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킨다.
결국 이 닫힌 공간은 불쾌감을 통해 관계의 압박, 

사회적 피로를 시각화한 것이다.

 

 


인물의 감정 설계 – 친절 속에 숨은 적대감

 

작품 속 인물들은 대체로 극단적으로 괴상하거나,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냉담하다.
이들의 언행은 일상적인 듯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나 있어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웃이 건네는 친절한 말투 뒤에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숨어 있다.
사소한 친절조차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시청자는 인물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이 불신은 점차 불쾌감으로 전환되며, 

결국 감정적 피로감마저 불러온다.

또한 주인공 역시 온전히 편안한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툴고, 불안정하며, 

때로는 자신이 지옥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타인은 지옥이다’의 인물들은 

모두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게 설계되어, 

시청자에게 안정감을 줄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 설계는 단순한 캐릭터 묘사가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즉, 불쾌함은 타인에게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내재된 문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양가적이다.
겉으로는 선량해 보이거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사 한 줄, 표정 하나에서 미묘한 위협을 드러낸다.
이처럼 친절과 적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캐릭터 설계는 

시청자의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특히 이웃 주민들이 보여주는 과도한 호의는 

낯선 친절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상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과도하게 다가올 때 

본능적으로 경계를 하게 되는데, 

드라마는 이 심리를 극대화한다.
이웃이 내미는 친절한 식사 제안이나 미소조차 

이면에는 어떤 숨은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역시 그 불쾌감을 증폭시키는 축을 담당한다.
그는 타인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그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에 동화되면서, 

타인과 관계 맺기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실감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인물들은 단순히 극적 장치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친절이 곧 위협으로 느껴지고, 

무심함이 냉혹한 거부로 다가오는 것은 

실제 우리 일상에서도 경험하는 일이다.
이 지점을 작품은 집요하게 파고들며, 

시청자가 스스로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서사의 감정 설계 – 긴장과 불쾌의 지속적 축적

 

보통 드라마는 갈등과 화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감정을 조율한다.
그러나 ‘타인은 지옥이다’는 의도적으로 이완의 순간을 최소화한다.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해결될 듯 말 듯한 긴장감은 곧 새로운 불쾌감으로 대체된다.

서사 전개는 시청자로 하여금 끊임없는 피로감을 누적시키지만, 

바로 그 점이 작품의 핵심 감정 설계다.
불쾌함이 일시적으로 해소되지 않기에, 

시청자는 결국 현실 속 인간관계에서의 불안을 더욱 선명히 자각하게 된다.

결국 이 드라마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감정적 불편함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옥은 타인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만들어낸 투영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작품은 불쾌함을 끝까지 유지함으로써 

시청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강요한다.

보통 서사의 기본 구조는 갈등이 고조되었다가, 

일정 부분 해소되며 긴장과 안도감을 오가게 된다.
그러나 ‘타인은 지옥이다’는 이 패턴을 깨뜨린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화되며, 

작은 이완의 순간조차 곧 새로운 불안으로 뒤덮인다.

이러한 서사 설계는 시청자를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두며, 

동시에 불쾌감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린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언제쯤 편안해질까”라는 기대를 품지만, 

그 기대는 번번이 배반된다.
결국 그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이야말로 이 작품이 노리는 감정적 효과다.

또한 서사 속 인물들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상식적으로는 하지 않을 선택을 반복하며, 

이는 시청자에게 또 다른 불편함을 안겨준다.
그 불합리성과 불투명성은 

인간관계의 현실적인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특히 결말로 갈수록 이 불쾌감은 극대화된다.
단순히 긴장감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내가 만나는 타인들은 정말 믿을 수 있는가?”,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와 같은 자문이다.
이처럼 서사의 축적된 불쾌감은 철학적 사유로 연결되며, 

작품을 단순한 스릴러가 아닌 인간학적 텍스트로 확장시킨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단순히 불쾌한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불쾌함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불안을 드러내고,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좁고 답답한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은유하고, 

기묘한 인물들은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쾌한 서사는 

우리로 하여금 끝내 스스로의 내면을 직시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감정 설계는 

불편함 자체를 예술적 장치로 승화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타인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불안, 불편함, 

그리고 그 속에서 비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지옥’이라는 은유 속에 녹아 있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시청자의 감정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불쾌함이라는 정서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꺼림칙한 울림으로 남아,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겨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