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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에도 끝나지 않는 모성애, 과연 윤리적일까? - 하이바이, 마마! 속 이승과 저승의 딜레마

by 궁금해봄이6 2025. 8. 28.


삶과 죽음이라는 절대적 경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된 차유리가 

사별의 아픔을 딛고 

새 인생을 시작한 남편과 딸아이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고스트 엄마의 49일 리얼 환생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로,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우리에게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가 제시하는 핵심 딜레마는 명확하다.
죽은 이가 산 자를 위해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숭고한 희생일까,
아니면 잔인한 포기일까?
차유리는 자신이 살면 

하나뿐인 딸이 귀신을 보는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에 죽음을 택한다는 설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모성애와 이기심,
희생과 포기 사이의 경계선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 드라마가 아니라,
이승과 저승이라는 절대적 경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감정들의 윤리적 타당성을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죽은 자의 의지는 산 자의 행복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과 관계의 윤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죽음 후에도 끝나지 않는 모성애, 과연 윤리적일까? - 하이바이, 마마! 속 이승과 저승의 딜레마
죽음 후에도 끝나지 않는 모성애, 과연 윤리적일까? - 하이바이, 마마! 속 이승과 저승의 딜레마

 

 

 

경계를 넘나드는 사랑의 윤리적 딜레마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가는 차유리의 존재 자체가 던지는 첫 번째 윤리적 질문은 

'경계 위반'에 관한 것이다.
자연의 질서,
즉 생과 사의 명확한 구분을 인위적으로 뒤흔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드라마에서 유리는 49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인간 세계에 머물며 딸 서우와 전남편 강화,
그리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존재는 단순히 '추억 속의 죽은 사람'이 아닌,
현실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입이 진정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철학적으로 볼 때,
경계의 존재는 질서 유지를 위한 필수적 요소다.
생과 사의 경계가 명확히 존재하는 이유는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을 통해 성장하고,
동시에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유리의 재등장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을 방해하는 동시에,
가족 구성원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딸 서우의 경우,
엄마의 재등장으로 인해 새엄마 민정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정상적인 가족 관계의 발전이 저해된다.
이는 유리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하고 깊다 할지라도,
그 표현 방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성애라는 감정 자체는 생과 사의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힘이다.
유리가 죽음 이후에도 딸을 걱정하고 돌보려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숭고한 감정 중 하나다.
이러한 감정을 단순히 '질서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부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결국 이 딜레마는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질서,
사랑의 표현과 그 영향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로 귀결된다.
유리의 선택은 완전히 옳지도,
완전히 그르지도 않은 복잡한 윤리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희생의 숭고함과 이기심의 경계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내 딸,

서우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미 죽었던 내가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김태희의 인터뷰 발언은

드라마가 제시하는 두 번째 핵심 윤리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희생이라는 행위는 겉보기에는 숭고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동기와 결과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리의 선택을 희생으로 볼 것인가,
포기로 볼 것인가?
이는 단순한 감정적 판단을 넘어서는 윤리학적 분석을 요구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유리의 선택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합리적 결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신이 살아남을 경우 

딸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되어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전제 하에,
가족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의무론적 윤리학의 관점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칸트의 정언명령에 따르면,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유리가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선택이 보편법칙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유리의 희생에는 미묘한 이기심의 요소도 내재되어 있다.
딸이 불행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감정,
자신 때문에 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순수한 이타심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욕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진정한 희생이라면 딸의 불행을 함께 짊어지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또한 유리의 선택은 딸 서우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다.
귀신을 보는 능력이 반드시 불행으로 귀결될 것인가?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서우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일방적 결정이 오히려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상대방의 의지와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결국 희생의 윤리는 단순히 

'나를 포기하고 너를 선택한다'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성의 문제다.
유리의 선택은 희생의 숭고함과 이기심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윤리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 윤리

 

드라마가 제기하는 세 번째 중요한 윤리적 쟁점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적절한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다.
유리의 재등장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먼저 강화의 입장을 살펴보자.
아내를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상처를 치유해온 그에게 

유리의 재등장은 혼란 그 자체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재혼을 통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려던 계획이 흔들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는 죽은 배우자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행복 추구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강화가 재혼을 결심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 욕구 때문이 아니라,
딸에게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주려는 부성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유리의 재등장으로 이러한 선의의 계획이 위기를 맞게 된다.
과연 죽은 사람의 의지나 존재가 산 사람의 행복 추구를 제약할 권리가 있는가?

다음으로 새엄마 민정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남편과 의붓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선의의 사람이다.
하지만 전처의 재등장으로 인해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재혼 가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갈등을 

초자연적 상황을 통해 극대화한 것이다.

민정의 고충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그녀가 서우에게 베푸는 사랑과 정성이 친엄마의 사랑 앞에서 평가절하되는 것은 

입양이나 재혼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를 반영한다.
유리의 존재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정의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그녀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준다.

가장 복잡한 입장에 놓인 것은 딸 서우다.
친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새엄마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심리는 

현대 가족 구조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재등장으로 인해 정상적인 가족 관계 형성이 지연되고,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아동의 건전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우는 친엄마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엄마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입양아나 이혼 가정 아이들이 흔히 갖는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치유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 윤리는 일방적 희생이나 포기가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균형 잡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유리의 마지막 선택은 이러한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질문들은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복잡한 영역에 남아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들은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재혼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등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감정의 역학관계들은 

《하이바이, 마마!》가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다룬 문제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국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교훈은 

사랑의 복잡성과 관계의 윤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완벽한 답은 없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드라마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매일 벌어지는 윤리적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
희생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하이바이, 마마!》는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 있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