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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설치도 복권처럼 느껴지는 세대

by 궁금해봄이6 2025. 7. 22.

"앱 설치도 복권처럼 느껴지는 세대
디지털 격차, 고령층을 소외시키다"


2025년 5월, 부산의 한 복지관 앞.
“건강보험 모바일 앱으로 신청하세요”라는 문구를 본 70대 어르신은 결국 돌아섰다.
그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지만, 

앱 설치부터 로그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복지 혜택을 포기했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세대’가 점점 소외되고 있다.
행정, 금융, 복지, 교통, 통신… 

거의 모든 영역이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기술을 다룰 수 없는 사람은 기본 권리조차 제한받는 현실이 된 것이다.

통계청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 활용 역량은 30~40대의 절반 수준 이하이며,
특히 앱 사용, 공공기관 웹사이트 이용, 

전자금융 서비스 접근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전환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대면 행정 축소, 키오스크 확대, 무인화 서비스가 일상화되었지만,
이 변화 속에서 고령층은 ‘눈치 보며 살아가는 국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디지털 격차가 고령층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과제가 무엇인지 함께 짚어본다.

 

앱 설치도 복권처럼 느껴지는 세대
앱 설치도 복권처럼 느껴지는 세대

 

 


디지털은 편해졌지만, 모두에게 그렇진 않다

 

2024년 기준 전국 65세 이상 노인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약 90%에 달한다.
겉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한 노년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순 전화·문자 외에는 거의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복지 신청, 행정 민원, 병원 예약, 교통 결제, 은행 업무처럼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디지털 기능은 인터페이스 복잡성, 

본인 인증의 어려움, 정보 접근 장벽 때문에 접근 자체가 어렵다.

서울의 한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연금 수령 확인서를 뽑으려던 75세 어르신이 30분 넘게 시도하다 

결국 직원의 도움으로 발급받는 일이 있었다.
또한 병원 예약조차도 전화보다 모바일 앱만 가능하게 된 경우,
자녀나 이웃의 도움 없이는 진료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나는 못 해도 돼'라는 자포자기로 이어지는 경우다.
노인들은 반복적인 실패 경험을 통해 디지털 기기에 대한 두려움과 위축을 느끼고,
이로 인해 점점 더 기술에 접근하지 않고 사회와 단절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러한 사례는 의료, 금융, 교통 등 삶의 필수 영역 전반에서 반복된다.
예를 들어, 일부 병원은 진료 예약과 접수를 키오스크 

또는 모바일 앱 전용으로 전환하고 있어
스마트폰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는 진료 자체를 포기하거나,
장시간 대기하거나 직원에게 사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자존감 하락, 수치심,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다음부터는 아예 병원 자체를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금융 부문도 마찬가지다.
지점 폐쇄로 인해 인터넷·모바일 뱅킹 사용이 사실상 강제되면서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공인인증서를 갱신하지 못한 노인들이 

자신의 예금을 인출하지 못하거나
송금·자동이체 기능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정부의 각종 지원금 신청, 보조금 수령, 

건강검진 예약 등도 대부분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디지털 문맹 상태의 고령층은 제도가 있음에도 그 존재조차 모르거나, 

안내를 받지 못해 혜택을 놓치는 일이 잦다.

이처럼 디지털화는 편리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 편리함이 전 국민에게 평등하게 도달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불평등과 소외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디지털 소외’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기기를 못 다루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학습 기회 부족, 정보 소외, 

제도적 배려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특히 고령층은 학습 속도가 느리고, 반복 학습이 필요하며, 

실수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지털 교육은 일회성 강의나 단기 집중형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지속적인 습득이 어렵다.

게다가 공공기관이나 민간 서비스의 시스템은
디지털 익숙세대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텍스트 중심, 작고 복잡한 버튼 구성, 반복되는 본인 인증 절차 등으로 인해
노년층에게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격차는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의 이용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결국엔 소외, 불안, 위축,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즉, ‘디지털 정보 격차’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회 불균형'을 야기하는 사회권의 문제인 것이다.

더불어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는 의사소통의 단절, 

금융범죄 노출, 여론에서의 배제로도 이어진다.
모바일 고지서 수신을 못 해 연체료가 발생하거나,
보이스피싱에 쉽게 노출되는 등의 사례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시스템이 

오히려 위험 요소로 작용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특히 디지털 소외는 일상생활의 작은 일부터 위급상황까지 전방위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당시,
모바일 앱 접속이 어려운 고령층은 

자녀나 지인의 도움 없이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했고,
심지어는 접종 일정에서 탈락하거나 불안한 상태로 방치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불편함이 아닌 사회적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나는 뒤처진 사람”, “국가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쌓이면서
디지털 기술뿐 아니라 제도 전반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다.

더불어 디지털 소외는 범죄 피해 가능성도 증가시킨다.
정보를 분별하거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능력이 부족한 고령층은
가짜 문자, 피싱 전화, 악성 링크에 쉽게 노출되며,
이는 금전적 피해뿐 아니라 심리적 충격과 자책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또한 고령층의 여론 형성 참여 기회도 줄어든다.
정책 설문, 지역참여 플랫폼, 공청회 등이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고령자는 정책 과정에서 배제되고, 

‘의견 없는 계층’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결국 디지털 소외는 단순한 ‘기술 이용 능력 부족’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존재감 상실로 이어지는 포괄적 사회 배제 현상이다.


 


연결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의 역할

 

이러한 디지털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선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 이상으로,
기술이 사람에게 맞춰지는 환경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고령층 맞춤형 디지털 교육이 절실하다.
현재 일부 지자체와 복지관에서는 스마트폰 기초반, 

키오스크 체험반, 은행 앱 사용법 등 소규모 반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고,
단순 기능 학습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정서적 자신감 회복까지 이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

둘째, 기술의 ‘보편 설계’(universal design) 원칙이 공공 서비스에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노인을 위한 특별 기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령, 장애, 정보 접근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를 뜻한다.
 (예 : 고대비 화면, 큰 글자 모드, 음성 안내, 간소화된 인증 절차 등)

셋째, 디지털 대체창구를 완전히 없애지 말고 병행 운영하는 제도적 유연성도 필요하다.
고령층 중 상당수는 여전히 직접 방문 상담, 전화 응대, 우편 고지서를 선호하며,
이는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성과 선택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지역 기반의 디지털 돌봄 지원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청년, 대학생, 퇴직 전문인력을 활용한 1:1 디지털 동행 프로그램은
노년층의 자존감 회복, 세대 간 소통, 기술 익숙도 상승에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디지털 교육은 단순한 ‘기능 습득’에서 그쳐선 안 된다.
진정한 디지털 포용은 고령자가 자신 있게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전망’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동행교실’이나 ‘세대 간 스마트폰 멘토링 프로그램’처럼
청년이 직접 노인의 스마트폰 사용을 돕고, 앱을 같이 설치하며,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실습 위주의 접근이 매우 효과적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 교육이 아니라,
세대 간 교류 활성화, 정서적 안정, 사회적 관계망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경험을 통해
노년층은 디지털을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도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민간 기업의 참여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은행, 병원, 통신사 등 고령자 이용률이 높은 기관은
오프라인 안내 인력을 별도로 배치하거나, 고령자 전용 단순 모드 앱을 개발해
정보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단기 성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고령층의 삶의 질, 사회적 존엄, 권리 회복과 직결되는 중장기 과제이며,
사회 전체가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책임이 있는 영역이다.


 

디지털 전환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그 흐름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배제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는 단지 기술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든 사회 구조가 본질적인 문제다.
기술이 빠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못 배우신 거 아냐?”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빨리 가버린 건 아닐까?”라고 묻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진짜 ‘스마트 사회’일 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완성은 기술의 고도화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설계에서 시작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기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